"정부에서도 반도체 기술 로드맵을 세웠지만 단기적인 정책 수립과 연구비 배분 등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학회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장기적인 기술 발전과 인력 양성 로드맵 등을 논의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
국내 유일 반도체 전문학회 반도체공학회는 15년 후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 전망을 담은 ‘반도체 기술 로드맵’을 최근 발표해 주목받았다. 국내 최초 중장기 반도체 기술 로드맵이다.
로드맵 작성을 주도한 인물은 차기 반도체공학회장을 맡게 된 신현철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다. 신 교수는 동료 교수, 삼성전자 연구원 등 7명과 함께 올해 1월 학회 내에 비전전략위원회를 설치하고 1년간 로드맵 작성을 주도했다. 그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려는 차원"이라고 작성 계기를 밝혔다.
로드맵에는 2040년까지 반도체 공정 수준이 0.3㎚(나노미터·10억분의 1m)급은 돼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에 맞춰 ▲반도체 소자 및 공정 ▲인공지능(AI) 반도체 ▲광연결 반도체 ▲무선연결 반도체 기술에 대한 발전 방향이 담겼다. AI 반도체의 경우 2040년 1와트의 전력으로 학습용은 초당 1000조번, 추론용은 100조번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025년 대비 약 100배 향상된 수준이다.
신 교수는 "로드맵 발표 후 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에게서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이야기해보자’는 연락을 많이 받았고 ‘이게 진짜 학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격려도 많이 받았다"고 반응을 밝혔다.
반도체 로드맵은 이미 주요국에선 활발히 수립되고 있다. 미국은 1992년 미국반도체공업회(SIA)가 NTRS(반도체 국가 기술 로드맵)를 수립해 반도체 기술 로드맵 수립 활동을 시작했고 1998년 ITRS(국제반도체기술로드맵), 2016년 IRDS(국제 소자 및 시스템 로드맵)으로 발전시켰다. IRDS에는 유럽 시나노 학회(SiNANO Institute)와 일본 SDRJ(일본 시스템 소자 로드맵 위원회)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10년 미래핵심기술 확보를 목표로 ‘반도체 기술 로드맵’을 수립, 소자·설계·공정 분야에서 45개 핵심 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신 교수는 이달 중 100쪽 분량의 정식 로드맵을 추가로 공개할 방침이다. 3년 주기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고 매해 세부 분야를 추가해 주요 기술을 현재 4개에서 10개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인 신 교수는 최근 반도체 산업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 주 52시간 예외 적용과 관련해 "국가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노동시간 제한은 생산 분야에 한정돼야 한다"며 "R&D 인력에 근무시간 제한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R&D 특성상 ‘이만큼만 하고 그다음엔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이어 "SK하이닉스에서 HBM 개발에 참여한 임원도 HBM을 개발할 때 3~4개월 동안 회사 건물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메모리 기술 트렌드에 대해선 "소규모, 애플리케이션에 특화된 다품종 시장으로 변하면서 온디바이스 AI라는 개념이 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디바이스 AI는 엔비디아의 GPU와 달리 대형 시스템이 아닌 소형 경량 시스템"이라며 "이 시장이 확장되면 HBM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AI 수요 증가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그 성능을 최적화하는 HBM이 갑자기 뜬 것처럼 또 다른 메모리 기술이 HBM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7~1998년 카이스트 학사·석사·박사 ▲1997년 다임러-벤츠 연구센터 연구원 ▲1998~2000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선임연구원 ▲2000~2002년 미국 UCLA 박사후연구원 ▲2002~2003년 퀄컴 선임연구원 ▲2003년~현재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 ▲2010~2011년 퀄컴 초빙교수 ▲2010년~현재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선임회원 ▲2023년~현재 광운대 전자정보공학대학 학장 ▲2024년 반도체공학회 수석부회장 ▲2025년 반도체공학회 회장(내정)
최서윤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