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일 년 가까이 계속되는 가운데 19일 열리는 한미약품의 임시주주총회가 향방을 가르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총은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와 임종훈 대표 등 '형제 측'이 모녀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이끄는 한미약품을 장악하기 위해 먼저 개최를 요구했다. 양측은 소액 주주 표심잡기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고소전을 벌이는 등 강경 대립해왔다. 이런 가운데 임 대표가 최근 주총 취소를 요구하자, 제약업계는 승기가 모녀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분석한다.
1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19일 열리는 한미약품의 임시주총 안건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한양정밀 회장)에 대한 해임 안이다. 이들의 해임을 전제로 박준석 한미사이언스 부사장과 장영길 한미정밀화학 대표를 신규 이사로 선임하는 안도 상정돼 있다.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그간 모녀 측의 '4자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 왔다. 4자연합은 어머니 송 회장과 여동생인 임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모녀 측 지분 일부를 인수한 라데팡스파트너스로 구성돼 있다. 한미약품 이사회는 총 10명으로 모녀 측 6명과 형제 측 4명인데, 형제 측이 모녀 측 박 대표와 신 회장을 해임하고 우군인 박 부사장과 장 대표를 이사회에 진입시켜 과반수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현재 한미약품 지분율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가 41.42%로 대주주인 가운데 국민연금 10.1%, 신 회장 7.72%, 한양정밀 1.42% 등이다. 소액주주는 약 39%로 추산된다. 주요 안건인 이사 해임안은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이 필요한 특별결의 안건인 만큼 최대주주인 한미사이언스의 의결권 행사가 핵심이다. 4자연합은 "임 대표가 독단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적법한 의사결정 체계 없이 형제 측의 사적 이익 달성을 위한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 대표가 1인 의사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지난 3일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으나 법원은 전날 이를 기각했다.
그 사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은 형제 측이 제기한 임시주총 모든 안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 해임 안건에 대해 특별한 해임 사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통상 국민연금은 검찰 기소 등 국가기관의 판단에 근거해 횡령·배임, 부당지원, 사익편취 등 법령을 위반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한 경우가 아니면 사내이사 해임에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 측은 이사 해임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의결권을 모두 확보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주총을 앞두고는 양측의 신경전이 더욱 가열됐다. 한미약품은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자료에서 "혁신 성과 창출을 위해 임시주총 안건은 모두 반대해달라. 이사 해임 건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투명하지 못한 의사결정이다"고 호소했다. 형제 측은 지난 9일 '한미약품 주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한미약품 주가 100만원 달성 목적의 혁신 경영체제를 구축하겠다. 의사로서의 경험과 한미사이언스 경영자로서의 경륜을 겸비한 신약 개발 적임자 박준석 신임 이사를 선임해 연구개발(R&D)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박 대표는 이달 초 임 대표 등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한미약품은 한미사이언스가 자사 임직원을 연이어 고발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내용을 왜곡·가공해 발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제 측은 앞서 모녀 측이 한미약품 자회사 온라인팜을 통해 불필요한 부동산을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임차해 회사 자금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한미약품은 이는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상속세 납부 및 주식담보대출 상환 압박 등을 받는 임 사내이사가 잇달아 지분을 매각하고 있는 점은 형제 측에 불리한 상황이다. 임 사내이사는 지난 13일 입장문 내고 한미약품 임시주총 철회를 제안했다. 표 대결에서 불리하게 된 임 사내이사가 4자연합에 물밑 대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미사이언스 측은 "(주총 철회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고, 한미약품도 "현재 시점에서 임시주총 취소를 검토하거나 번복하기에는 물리적·시간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혀 주총은 예정대로 열리게 됐다. 제약업계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주식 매각으로 지분이 줄어들고 있는 형제 측이 내년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다시 가족 간 상생을 앞세워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조인경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