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비대면 처방 중단 사태를 계기로 국내 비대면 진료 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2월 2일, 정부는 위고비를 포함한 전문의약품군에 속하는 비만 치료제의 비대면 처방을 전면 중단했다. 이는 10월 중순 국내 출시 직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통한 '묻지마 처방'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서는 기본적인 체중과 키도 확인하지 않은 채 처방이 이뤄졌으며, 심지어 '10초 처방'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비대면 진료는 1988년 '원격의료'라는 이름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무선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비대면 진료가 도입됐고, 미국, 일본, 호주 등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제도화에 성공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로 30년이 넘도록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비대면 진료의 전환점이 됐다. 2020년 초 감염병 확산으로 병원 방문이 제한되면서, 정부는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과 처방을 허용했다. 이 기간에 소규모 스타트업이었던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다.
현재 국내 비대면 진료 시장은 '닥터나우', '굿닥' 등의 플랫폼이 의료기관과 환자를 연결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허용된 진료 범위는 소아청소년과 질환, 발톱 무좀, 여드름, 탈모 등으로 제한적이다. 흔히 비대면 진료 플랫폼으로 오인되는 '강남언니', '바비톡', '똑닥' 등은 실제로는 의료정보 제공 및 예약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플랫폼이다. 특히 '똑닥'의 경우 소아과 예약 필수 앱으로 자리잡아 유료 서비스로 전환하는데도 성공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비대면 진료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대면진료를 대체할 만큼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각국의 건강보험 청구액을 봤을 때 비대면 진료의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는 의료서비스가 가진 고유한 특성인 '비분리성' 때문이다. 서비스 마케팅 관점에서 의료서비스는 공급자(의사)와 소비자(환자)가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는 일반 소비자와 달리 건강상의 문제를 가진 환자라는 점에서, 비대면 서비스로의 전환이 다른 IT 기반 서비스만큼 빠르게 이뤄지기는 어려운 구조다. 환자들은 아플 때 의사를 직접 대면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특성도 보인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의료계의 반대도 다소 완화된 상황이다. 다만 비대면 진료 산업의 성장은 게임이나 온라인 쇼핑처럼 급격한 성장보다는 틈새시장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확대가 예상된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영역에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두드러진다. 24시간 발생할 수 있는 소아 질환의 특성과 개업 소아과의 감소, 보호자 동반 필수 등의 요인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의 수요가 높다. 또한 여드름, 탈모 등 만성적이면서 응급성이 낮은 질환도 비대면 진료의 주요 영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단위면적당 의사 수가 네덜란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3위일 만큼 의료 접근성이 높은 국가다. 도시 지역의 경우 상가마다 의원이 입점해 있을 정도로 의료기관 접근성이 뛰어나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와 같은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들에 비해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이에 국내 비대면 진료 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원격진료 장비 도입, 진료시간 증가 등으로 인한 의료수가 인상은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적자 구조이며, 건강보험 재정 여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비대면 진료 도입에 따른 추가 비용은 원격 진료 장비 구입, 진료 시간 증가, 시스템 운영 비용 등 다양한 요인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비용은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급여 항목 확대로 이어져 건강보험료 인상과 본인부담금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비대면 진료의 수가 책정과 재원 마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동혁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