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탄핵안이 가결됐다면 이 글은 쓸 필요도 없었다. 골든타임이 지나는 석유화학 구조조정, '75년 동업'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 호황을 맞은 조선사의 불안요인,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둔 배터리 업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을 두고 맞붙은 한화와 HD현대의 사정, 창사 후 첫 파업 위기에 처한 포스코까지. 다시 짚어봐야 하는 중후장대 산업 이슈만 해도 차고 넘쳤다. 시급을 다투던 쟁점들은 한 사람 혹은 한 무리가 극악무도하게 자행한 비상계엄과 그 후폭풍에 휘말리고 말았다.
당장 계엄 후 일주일 새 주가가 20% 가까이 급락하자, 두산그룹은 7월부터 추진해온 사업구조 재편을 결국 철회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7200억원의 차입금을 덜어내고 1조원의 투자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체코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폴란드·스웨덴·네덜란드 등지에서 대형 원전 10기 수주와 연 20기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 시설 투자에 쓸 자금이었다.
계엄발 국정공백 사태는 현 정부의 원전 정책 불확실성도 키웠다. 'RE100(재생에너지 100% 활용)'을 우리 현실에 맞춰, 원전 등을 포함한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도 추진력이 반감될 것으로 우려된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프로젝트마저 불확실성에 노출됐다. 대규모 전력이 필수인 인공지능(AI) 시대를 앞두고 전력 공급 주력으로 떠오른 차세대 원전도 투자 적기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비단 두산만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살아있는 생물로 일컫는 경제는 '불확실'을 싫어한다. 쉽게 말해 10을 투자해 1년 뒤 벌 수 있는 게 얼마인지, 10년 동안 돈을 빌리면 이자는 얼만지 예측 가능해야 한다. 기업은 예측 위에 계획을 만든다. 만약 지난주 탄핵 표결이 성립하고, 그 결과 탄핵안이 가결됐다면 어땠을까. 두 번이나 똑같은 경험을 했던 만큼, 경제나 사회 동요는 지금 보다 덜하지 않았을까. 즉각적인 직무 정지와 권한대행 체제로 이행되면서 정상적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관건은 사태 수습이란 얘기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씨를 대신해 정부와 여당은 '질서있는 퇴진'을 모색하고 있다. 대통령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챙기겠단 거다. 혼란을 줄이겠다는 선의로 해석해도, 문제는 헌법상 근거가 없어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시급한 국정운영을 내란 수사 대상 오른 국무위원들이 맡는 것도 불안을 키운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은 10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등 11명에게 소환 통보한 상태다. 피의자 신분이 된 한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이른바 '한한 체제'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혼돈 해소보다는 '식물정부' 장기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연일 경제부처 합동 대책 회의를 열지만, 회의로는 문제를 풀지 못한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불안한 정치적 상황이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잇따라 경고하고 있다. 언젠가 혼란은 정리되겠지만, 주춤주춤 머뭇거리기엔 잃어버릴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라도 탄핵안을 통과시켜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오현길 산업IT부 차장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