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올해 꾸준히 진행해온 '리밸런싱(사업재편)' 기조가 연말인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안정적 변화를 위해 연중 수시 인사를 단행하면서 사장 승진은 2명에 그쳤으며, 신규 임원도 예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룹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배터리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차세대 사업인 AI(인공지능)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기술 현장형 인재 등용과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SK그룹은 5일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각 계열사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 임원인사와 조직개편 사항을 공유 및 협의했다. 신규 선임 임원은 총 75명으로 지난해 82명 보다 줄었다. 2023년 145명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이다. 신규 선임 임원 평균 연령은 만 49.4세로 지난해 만 48.5세보다 많아졌다.
세부 인사 명단을 살펴보면 계열사 간 벽을 넘는 이동이 많았다.
우선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사장에 손현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지원팀장(부사장)을 선임했다. 또 디스커버리 계열사인 김기동 SK케미칼 경영지원본부장(재무실장 겸직)은 그룹 지주사인 SK㈜ 재무부문장으로 왔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올 초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역할이 확대된 이후 SK와 SK디스커버리의 인력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SK온은 지주사인 SK㈜ 신창호 PM부문장을 운영총괄 임원으로 선임했다. 지주사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으로 SK온의 살림을 도맡는다.
특히 올해 고대역폭 메모리(HBM)을 통해 국내 반도체 산업을 견인한 SK하이닉스 고유의 '일류 DNA'를 전 계열사에 확산하기 위한 인사 이동을 실시했다.
피승호 SK실트론 제조·개발본부장을 SK온 제조총괄로 내정했다. 그는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R&D(연구개발) 실장 등을 담당하며 해외에 의존하던 기능성 웨이퍼의 개발을 주도해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이끈 바 있다.
이석희 CEO(최고경영자)에 이은 SK하이닉스 출신으로, 전기차 시장의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이후 시장 확대를 위한 선제 대응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SK실트론과 SK㈜ C&C 등에도 SK하이닉스 출신 임원들을 전환 배치하며 '혁신 DNA'를 이식하겠다는 복안이다.
SK그룹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AI와 디지털 전환(DT) 사업에 대한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계열사 간 역량을 한 곳으로 결집, 시너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글로벌위원회 산하 유영상 SK텔레콤 CEO(최고경영자)가 맡은 AI TF는 AI 추진단으로 확대하고, 윤풍영 SK㈜ C&C CEO가 맡은 기존 DT TF와 별개로 DT 추진팀도 신설한다.
또 SK텔레콤 주도로 AI R&D센터를 신설, SK하이닉스 등 계열사 간 시너지를 추진한다. SK㈜는 CEO 직속으로 'AI혁신담당' 조직을 신설, 사업 발굴에 나선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열린 'SK AI서밋'에서 "AI 미래를 가속하기 위해 SK가 보유한 AI 역량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더해 글로벌 AI를 혁신과 생태계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아울러 계열사별로 운영개선(OI)을 통해 불필요한 조직을 축소하고 리밸런싱의 속도를 높인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8개 위원회 조직 구조와 소수 정예 기조는 지속 유지하면서 기존 육성된 인력은 계열사 현장으로 전진 배치한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합병한 SK이노베이션과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관리조직 기능을 통합하고 OI 추진단 산하에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구매, AI·DT 기능을 결집했다. SKC도 조직 규모를 축소하고 현장 중심으로 재정비했다.
확대되는 대외 위험요인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북미 대외 업무 컨트롤타워로 신설된 SK아메리카스 대관 총괄에 폴 딜레이니 부사장을 선임했다. 폴 딜레이니 부사장은 미 무역대표부(USTR) 비서실장,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무역고문 등을 역임하다 지난 7월 SK아메리카스에 합류, 그룹 미주 GR(Government Relations)을 총괄한다.
한편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SK㈜에 신설된 '성장 지원' 담당을 겸직하면서 미래 성장 사업 발굴을 위해 신설한 조직을 추가로 맡으며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할 전망이다.
오현길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