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지업계가 실종된 연말 특수에 울상이다. 통상 4분기는 달력, 다이어리 등 제작물량이 몰리는 시기지만 뚝 끊겼다. 여기에 전반적인 소비 위축으로 선물 수요도 감소해 제지업계 실적에 비상등이 켜졌다.
4일 제지·인쇄 업계에 따르면 올해 달력, 다이어리 등 이른바 ‘시즌물’ 제작물량은 전년보다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휴대전화로 달력과 다이어리 기능을 대신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한국제지연합회 통계를 보면 시즌물 제작에 쓰이는 용지를 포함하는 인쇄용지의 4분기 생산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21년 61만8938t에서 2022년 58만9219t, 지난해에는 58만7312t으로 줄었다. 연말 특수를 이끌어온 시중은행도 매년 달력 제작 부수를 축소하고 있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달력 제작 부수는 630만부 정도로 2019년과 비교하면 20%가량 줄었다.
소비가 회복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연말 시즌물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내수 경기가 좋을 땐 선물 수요가 늘어, 포장지에 쓰이는 백판지 물량이 많이 나갔다”면서 “하지만 최근 몇 년은 불경기 탓에 선물 수요도 줄어 연말 특수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지업계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인쇄용지 가격을 인상했다. 한솔제지는 지난 9월 인쇄용지 가격을 7% 인상했다. 무림(무림페이퍼·무림P&P·무림SP)과 한국제지 역시 8월 말과 9월부터 인쇄용지 가격을 7% 인상했다. 모두 도매상에 적용하는 기준가(고시가) 대비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봤다.
하지만 가격 인상에도 소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4분기 실적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제지와 인쇄 관련 업종에 훈풍이 부는 듯했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앞서 3분기 제지회사들은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한솔제지는 올해 3분기 영업손실 179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한국제지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0% 줄어든 5억원을 기록했다. 무림이 그나마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8% 증가한 87억원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해상 물류비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뛰어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으로 수출이 위축될 수 있어 내년에도 저조한 실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승진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