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석유화학 등 글로벌 과잉 공급으로 어려운 업종에는 완화된 기업활력법(기활법) 기준을 적용해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석화 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여러 관계자에게 물었지만 "수요가 없다"는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가 몇 달간 고심을 거듭해온 방안이지만 정작 기업들은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번 대책의 핵심으로 거론된 기활법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설비를 줄이거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 정부가 패스트트랙 절차와 세제 혜택, 자금 지원 등을 제공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9월 선제적으로 기활법 기준을 완화했지만 3개월 동안 기활법 적용을 신청한 석화 기업은 없다. 기업들은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석유화학은 복잡하게 연결된 장치 산업이다. 특정 생산 라인만 떼어내 매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업부나 공장 전체를 매각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지인데 여기에서 또 다른 장벽이 있다. 바로 공정거래법(독과점 규제)이다. 사업을 통째로 매각하고 싶어도 시장점유율이 독과점 기준에 저촉되면 인수합병(M&A)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업계는 계속 독과점 규제의 한시적 유예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기활법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택하며 서로 간극을 드러냈다. 독과점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M&A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소극적 선택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중 대규모 M&A를 주도할 곳이 많지 않은 데다, 해외 기업으로 매각할 경우 규제 완화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
업계는 독과점 규제 유예가 단순히 정책 성과를 넘어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논의도 하지 못했던 사업 재편의 물꼬를 트고 새로운 선택지를 열어준다. 지금처럼 기업들에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환경을 제대로 조성하지 못한다면 정부 대책은 실효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4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석화 업계와 의견을 나누며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공을 들였다. 조만간 발표될 대책에 기업들이 요구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빠진다면 모든 시간과 노력이 수포가 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기업의 의욕을 꺾는 패착이 될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과감한 정책 변화를 통해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성민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